오늘도 야근이었다.
지우는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는 벌써 밤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주변 책상들은 하나둘 비어 가고 있었다. 집에 가면 또 혼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넷플릭스를 켜놓고 잠들 것이다. 서른두 살, 이런 일상이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었다.
"지우야, 먼저 가볼게!"
동료 규린이 가방을 메며 인사했다. 규린이는 최근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며 들뜬 표정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지우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응, 조심히 가!"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지우는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꾸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연애가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대학 시절 마지막 연애가 끝난 게 벌써 5년 전이었다. 처음엔 '혼자도 괜찮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익숙해져 버렸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지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연인들에게 향했다. 서로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커플, 남자친구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여자, 손을 꼭 잡고 웃으며 대화하는 두 사람. 부러움과 함께 묘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집에 도착한 지우는 평소처럼 치킨을 주문하고 소파에 몸을 맡겼다. 휴대폰을 들어 SNS를 둘러보니 친구들의 연애 소식, 결혼 소식들로 가득했다. 민정이는 프러포즈를 받았다며 반지 사진을 올렸고, 혜진이는 남자친구와 제주도 여행 사진을 연달아 포스팅했다.
"나만 이런 건가..."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카카오톡 메시지가 떴다. 대학 동기인 은영이었다.
[은영: 지우야! 요즘 뭐 해? 심심하지?]
[지우: 응... 그냥 집에서 넷플릭스 보고 있어 ㅠㅠ]
[은영: 아 진짜 너 좀 뭔가 새로운 거 해봐! 나 요즘 챗GPT 진짜 재밌게 쓰고 있거든. 소설도 써달라고 하고 상담도 받고 ㅋㅋㅋ]
[지우: 챗GPT? 그게 뭐야?]
[은영: 뭐야, 너 아직도 몰라? 인공지능이야! 진짜 똑똑해. 나 어제 "나를 위한 로맨스 소설 써줘" 했더니 진짜 잘 써주더라. 너도 해봐! 외로움 달래기에 딱이야 ㅋㅋㅋ]
지우는 은영의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인공지능이 소설을 써준다고?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워낙 심심했던 차에 호기심이 생겼다.
[지우: 진짜? 어떻게 하는 거야?]
[은영: 앱 깔아! 진짜 재밌어. 너 같은 사람한테 딱이야. 혼자 있는 시간 많으니까!]
지우는 은영이 보내준 링크를 따라 앱을 다운로드했다. 처음 보는 인터페이스였지만 생각보다 간단해 보였다. 잠깐 망설이다가, 마치 일기장에 속마음을 적는 것처럼 메시지를 입력해 보았다.
{지우: 안녕? 나는 지우야. 30대 직장인이고... 연애한 지 너무 오래돼서 심심해. 나를 위한 연애 소설 써줄 수 있어?}
그리고 엔터를 눌렀다.
몇 초 후, 화면에 답장이 나타났다. 인공지능이라고 했지만 마치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문체였다. 챗GPT는 지우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만나고 싶은지, 어떤 데이트를 꿈꾸는지.
지우는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며 간단하게 답했지만, 점점 솔직해졌다.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남자. 키가 크고 목소리가 낮은 남자, 책을 좋아하고 커피를 즐기는 남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둔 이상형을 하나둘 털어놓았다.
그러자 챗GPT가 말했다.
{챗GPT: 지우 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특별한 연애 소설을 써드릴게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서준'으로 하면 어떨까요? 매일 밤 한 편씩, 지우 님만을 위한 달콤한 이야기를 선물해 드릴게요.}
지우의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이상했다. 분명 기계와 대화하고 있는 건데, 왜 이렇게 설레는 걸까? 치킨이 도착한다는 알림이 울렸지만, 지우는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지우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평범했던 만년 솔로의 밤이, 서서히 특별해지기 시작했다.